[혁명]날빈/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을 대거 숙청한것처럼 말하시지만 실록상 처형된사람은 김덕령 한분입니다. 김덕령장군의 경우엔 이몽학의 난에 때문에 처형되었습니다.이몽학의 난당시 자신이 김덕령,곽재우의 후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며 병력을 모아 난을 이르켰고 이에 국문을 하였는데 곽재우의 경우 무혐의로 풀렸났지만 김덕령의 경우엔 사사당했습니다.
그외의 2차진주성에서 사망한 의병장들을 제외하면 다들 인조때까지 관직생활을 하시고 잘 지내십니다.곽재우의 경우엔 반란사건에 연류가 되었기에 활동을 하지않고 조용히 지낸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경복궁의 화재에 대하여는 실록상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선조실록에서는 민간에 화재에 대해 이런이야기들이 돌고있다 정도이며 인조때 재간된 선조수정실록안에서 백성들이 불태웠다라고 명시된곳은 형조와 장례원일뿐 궁궐에 대하여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정확히는 상이 떠날때 궁성에서 화재가 났다.난민들이 내수사와 창고를 습격하여 재화를 들고갔으며 궁외에 있는 형조와 내수사를 불태웠다.라고 남겨져있습니다.
오제키의 조선정벌론 내에는 궁궐의 기와색 크기등 자세히 서술되어있기도 합니다. 이는 개인의 기록이라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적어도 일본군침입당시 불이 나지않았다라고 생각하는 근거로 봅니다.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활동이 적은것은 임진왜란이 장기화되면서 의병장및 병력을 관군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의병장 한명련장군은 의병장을 하는중에 경상우도 별장으로 임명되고 정유재란당시에는 권율의 지휘하에 전투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또 권응수은 의병으로 영천성을 탈환하여 병마우후가 되고 정유재란당시 경주성을 방어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