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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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인적으로 리뉴얼이 필요한 장수 5성편
카포명 촉국지W
등록일 2014-10-24 조회수 2933
목 록
bbtan
2014-10-26
5장료는 너무 오버스팩
무력 낮추고 철벽 or 역대 중에 하나는 무조건 빼고 바꿔야함 .
통무도 높고 통무지도 높은데 저런 최상위능력 2개라는건 모든 무장 통털어서 최강장수 .
포지션 제외하고 퀄리티로만 놓고보면 복양여포, 무신, 5장합, 5조운 능가함 .

합비전투가 삼국지w 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도 아니고,
그 전투에서 활약한 장료가 삼국지w 역대급 최고의 활약을 펼친것도 아닌데 . . .
물론 3계략에 끔살당할수도 있고 3성최저장이랑 비등대등한 전투를 볼수도 있지만 저건 너무 아님 .
HEFFYEND2
2014-10-25
어휴 안그래도 5성 토나오는데..더 상향시키자니..
竹中半兵衛
2014-10-25
後至漢中,使關侯身死無孑遺,上庸覆敗,徒失一方。是羽怙恃勇名,作軍無法,直以意突耳,故前後數喪師衆也
후일 한중으로 진군하여, 관우는 죽고 생존자가 없었으며 상용은 패배하여 헛되이 한 쪽 지방을 잃었습니다.
이는 관우가 자신의 용맹함과 명성에 기대어 병사를 부리는 법도가 없었으며,
기분에 따라 공격하였기 때문에 전후로 여러 차례 병사를 잃게 된 것입니다.

삼국지 w에서 전투라는것은 엄연히 병사를 테리고 적의 장수와 전투를 하는 전쟁게임입니다.

그렇기 태문에 순욱같은 전략형 군사가 아닌 내정형 군사가 크게 쓰임새가 있지 않으며,

허저와 전위 같은 군사령관 보다 개인의 용력이 빛이난 호위장군들 역시 지력의 부족함과 전장에 쓰기에 2프로

부족하게 설정되어진 상황속에서, 군략적인 모습이 부족하며, 용력만이 기록으로 남는 관우가

98 98 80이라는 엄청난 스탯과 함께 부대의 공격력과 방어력 상승하는 장본의 상위계열인 함진영 팔문금쇄진을 넘는 무신으로

나온것이 결국 의미없음님이 말씀하시는 관우의 결론은 무능하지 않다라는 결론 도출이지

장군중의 장군 즉 삼국지w에서의 최고의 장군으로 기록하기엔 잠시 항복한 시절인 조조밑에서 고작 1승의 전공으로

삼국지내의 최고의 장수라기엔 무리라는것은 본인이 인정하시는거 같군요.
竹中半兵衛
2014-10-25
우선적으로 잘못되어있는 부분이,

200년 전기 시절 고순만이 유일하게 진을 기초로 전투에 나섰다라는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전술이라는것은 머나먼 은나라와 주나라의 패권을 다툰

봉신연의 즉 태공망 강상의 전략서 육도에서부터 전법에 관련하여 기록이 되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전쟁이 하루하루 끊임없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춘추전국시절 유명한 손무의 손자병법으로

기록되어 전술이 발전하게 되어지지요. 손자병법에서

군대의 힘은 세라고 하고 이 세력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여건을 진형이라 하옵니다.

진법이란 여러 진형 중 적의 허점을 트러내고 아군이 이길수 있는 여건에 맞는 진형을 고르는 원리입니다.

라고 기록되어져 있으며, 원진, 방진 추행진 장사진 안행진 어린진 학익진 전술의 핵심이 태부분 이 시절

완성되었다는것입니다. 결국 정규군이 아니였던 황건적의 난에 벌어진 관군과 시민군과의 정규적인 전투가 아닌다음에야

약 600여년 전에 쓰여진 손자병법에 기록되어진 진형을 기반으로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을리가 없다는것이죠.

말씀하신 장수가 달려나가 적병의 목을 베면서 전투를 하는 구 전투는 이미, 초한쟁패에서 한신이 승리를 종결 지으며

정리시켜놓은 전쟁입니다. 결국 관우를 돌이켜 보면 유비군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툰전투는 물에 잠긴 우금군의

항복외에 없으며, 청니전투에서 악진과 문빙에게 패했고 번성전투에서 서황에게 패했습니다.

말씀하신태로 관우의 능력부족으로 요립역시 군사적인 재능을 비판했었구요.
의미없음
2014-10-25

정사 기록을 보면
만부당에 대한 언급은 정욱전에 나온 말이고

여몽전 육손전 온회전 주유전 유엽전의 경우를 보더라도 관우에 대한 경계나 그 능력에 대한 칭찬은 될지언정 험담은 없습니다

제가 생각했을때는 단순히 관우가 부대운용을 잘 못한다가 아니라 장수 한명에 의존해서 전투의 행방이 갈리는 구방식의 전투체계가 진과 운영을 통한 전투를 하는 신전투체계를 뒤쳐지는 상황에서 관우가 그 전투 체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가로 봅니다

이런한 전쟁의 체계 변화는 이후에도 몇차례 확인할수가 있는데

변방으로 그러한 전투 체계의 변화를 못따라간 서량의 변이 그렇고 중국에 비해 문화나 군사운영이 떨어질수 밖에 없는 남만 정벌이 그러한 구전투체계와 신전투체계의 변화를 알려주는 경우라고 봅니다

힘좀 쓴다는 장수들이 한번쯤은 듣는다는 용열하다는 언급이 전혀 없는 관우의 경우를 보면

단순히 관우가 병사를 통솔하지 못하고 장수로써 그릇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전투체계부터 겪은 입장에서 익숙하고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전투 형태를 가지고 형주토벌을 임했는데 이러한 구체계의 약점을 잡히면서(장수에 의존을하다보니 장수가 존재하는 전장에서는 강한 역량을 발휘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상당히 빈약해지는) 그 한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서 수습을 하기도 이전에 종결되어진 거지 무능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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